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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학

예수님의 침묵이 보여주는 순종의 신학

by star-road 2025. 10. 20.

서론: 말이 멈춘 자리에서 드러나는 순종의 깊이

사람은 언제나 말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려 한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이자 존재의 증명이다. 그러나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 그분은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오히려 침묵하셨다. 재판을 받을 때도, 모욕과 비난을 받을 때도, 예수님은 거의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 침묵은 단순한 무반응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대한 철저한 순종이었다.

 

예수님의 침묵은 단순한 감정의 억제나 인내의 표현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언어로는 다 담을 수 없는 신적 의도를 드러내는 행위였다. 말이 넘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그분의 침묵에서 배워야 한다. 침묵은 수동적 회피가 아니라, 능동적 신앙의 표현이며, ‘순종의 신학’의 핵심을 이루는 영적 태도다.

 

오늘 이 글은 예수님의 침묵을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인간 내면의 신앙 구조를 보여주는 신학적 사건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그 침묵이 어떻게 순종의 본질을 드러내며, 현대 신앙인의 삶 속에서 어떤 의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본다.

 

1. 침묵은 비겁함이 아닌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는 태도

사람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즉시 항변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다. 빌라도 앞에서도, 대제사장 앞에서도 그분은 침묵을 지키셨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 침묵은 비겁함처럼 보이지만,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시간에 대한 절대적 신뢰였다.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곧 자신의 판단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시한다는 의미다. 예수님의 침묵은 “지금은 내가 말할 때가 아니다”라는 영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되는 때를 기다리셨다. 그 기다림 속에서 세상의 시선은 조롱을 던졌지만, 하나님은 그 침묵 속에서 구속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다.

 

오늘날 우리는 너무 빠르게 말하고 반응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말보다 기다림이 신앙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가르친다. 순종은 단순히 “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하지 않아야 할 때를 아는 지혜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의 침묵이 보여주는 순종의 신학

 

 

2. 겟세마네의 침묵: 인간의 고뇌와 신적 순복의 경계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은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분은 깊은 고뇌 속에서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지만, 곧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덧붙이셨다. 이 짧은 대화 이후, 복음서는 긴 침묵을 기록한다.

 

그 침묵은 인간의 공포와 신적 담대함이 만나는 자리였다.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은 도망치지 않으셨다. 오히려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맡기셨다. 그 순간의 침묵은 단순한 포기가 아니라, 자기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는 내면의 결단이었다.

 

이 장면은 신학적으로 ‘케노시스(자기 비움)’의 과정으로 해석된다. 인간적 욕망과 신적 순종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예수님은 침묵으로 자신을 비우셨다. 그리고 그 비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이 채워졌다. 결국 겟세마네의 침묵은 신앙의 본질이 ‘말’이 아니라 ‘내면의 항복’ 임을 보여준다.

 

3. 재판 중의 침묵: 진리를 말하지 않고 드러내는 방법

예수님은 재판을 받으실 때, 자신이 진리임을 말로 설명하지 않으셨다. 진리는 증명되는 개념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드러나는 실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말로 옹호하지 않고, 삶으로 증거 하셨다.

 

빌라도가 “당신이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거의 대답하지 않으셨다. 인간이 진리를 왜곡할 때, 침묵은 진리를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 그분은 세상의 언어로는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전해질 수 없음을 알고 계셨다.

 

신앙은 말로 선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삶으로 증언하는 신앙이 더 깊다. 진리를 향한 순종은 논쟁이 아니라 실천에서 완성된다. 예수님의 침묵은 진리가 말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4. 십자가 앞의 침묵: 고통 속에서도 드러나는 순종의 완성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거의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침묵은 절망의 표현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받아들이는 신앙의 언어였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는 한 마디 이후 이어진 긴 침묵은, 세상의 폭력과 죄를 포용하는 사랑의 침묵이었다.

 

십자가의 침묵은 인간적 억울함에 대한 항변이 아니라, 구속의 사명을 완수하는 순종의 절정이었다. 예수님은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놓지 않으셨다. 그분의 침묵은 세상의 소리를 넘어선 하늘의 응답이었다.

 

신학적으로 보면 이 순간은 ‘순종의 신학’이 완성되는 자리다. 순종은 감정의 억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건이다. 예수님의 침묵은 그 경계를 넘어서는 신앙의 승리였다.

 

5. 침묵의 신학이 주는 현대적 의미

오늘날 신앙인에게 예수님의 침묵은 여전히 도전이다. 우리는 SNS와 대화, 논쟁과 해석 속에서 자신을 끊임없이 설명하려 한다. 하지만 예수님의 침묵은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신앙의 확신”을 보여준다.

 

진정한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해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 따름은 종종 말이 아닌 침묵으로 표현된다. 침묵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욕망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그 순간 신앙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삶의 태도로 변한다.

 

예수님의 침묵은 또한 인간관계 속에서도 중요한 지혜를 준다. 때로는 말보다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된다. 논쟁보다 침묵이 더 깊은 설득력을 가진다. 침묵은 회피가 아니라, 상대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공감의 언어다.

 

6. 순종의 신학: 말하지 않음의 능동적 신앙

순종은 복종과 다르다. 복종은 외적인 힘에 의한 굴복이지만, 순종은 내면의 결단에서 비롯된다. 예수님의 침묵은 그 결단의 표현이다. 그분은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의지에 스스로 동의하셨고, 그 동의가 곧 구원의 시작이었다.

 

신앙의 여정에서 침묵은 가장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 말이 멈추는 순간, 인간의 자아가 비워지고, 그 자리에 하나님의 뜻이 채워진다. 이것이 ‘순종의 신학’의 핵심이다.
순종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까지 기다리는 신앙’이며, 침묵은 그 기다림의 형식이다.

 

결론: 침묵은 순종의 가장 깊은 언어

예수님의 침묵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향한 인간의 완전한 헌신을 보여주는 신학적 상징이다. 그분은 침묵으로 세상의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 반응하셨다. 그 침묵 속에서 인간의 죄는 용서로 바뀌고, 고통은 구속으로 변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은 ‘많이 말하는 신앙’이 아니라 ‘깊이 듣는 신앙’이다. 침묵은 하나님이 말씀하실 공간을 남겨두는 행위이며, 바로 그 공간에서 순종이 자란다.

 

말이 넘치는 세상 속에서, 예수님의 침묵은 우리에게 다시 신앙의 본질을 묻는다.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해 나는 얼마나 조용히 서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멈추는 순간, 우리의 침묵은 예수님의 순종과 닮아간다.